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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2026 · 06 · 01

I~ 쉿 비밀인데!

Editor 왕 잔치

 

 

 

 

연세대 재활학교 옆 고양이 밥그릇

 

누군가 내게 길을 걷다 마주칠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에 대해 묻는다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말할 것이다. 

 

‘길고양이 만나기’

 

고양이는 인간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큰 동물이다. 부얼부얼한 솜털을 이곳 저곳 비벼대며 체취를 남기고, 정해진 시각에 익숙한 장소에서 꼬리를 둥글게 말고 잠에 든다. 그들에게 낯선 장소는 위험의 온상이다. 다른 고양이들의 텃세와 처음 보는 지형지물은 실체 없는 두려움이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먹잇감이 떨어지지 않는 한 절대 동네를 떠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날마다 먹이를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가끔 나타나는 치즈냥을 만나는 날은 운 좋은 날이다. 행운이 추가로 따른다면 솜뭉치같은 새끼 고양이들도 볼 수 있다.

 

 

연대 정문에서 나와 서쪽으로 걷다 보면 남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연세대 재활학교 정문‘이 나온다. 이곳에 사는 고양이, 일명 ‘치즈’와 ‘턱시도(살이 토실한 편이라 ‘돼지’라고도 부른다)’는 명실상부 마스코트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자취촌 입구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누가 지나가든 말든 꿋꿋하게 식사를 마치는 강심장들이다. 원체 동네 곳곳을 쏘다니기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마주치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을 지날 땐 꼭 한번 녀석들의 밥그릇이 놓여 있는 풀숲을 쳐다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하얀 밥그릇엔 사료가 고봉밥처럼 담뿍 채워져 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정이다.

 

 

 

“뭘 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에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소개한다.

 

“물론이야. 자신이 가진 걸 소중히 여길 줄 알면 행복하고, 자신이 갖지 않은 걸 갖고 싶어 하면 불행하지. 난 원하는 걸 다 가졌어.” 

 

 

연희동 청송함흥냉면본관 

 

누군가 내게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을 하나만 꼽으라면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냉면!”

 

참 이상한 음식이다. 대개 사람들은 찬 음식을 여름의 전유물로 분류하지만, 냉면은 세간이 규정한 모든 분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도, 코끝이 얼얼해지는 겨울에도 냉면은 이상하리만치 생각난다. 어떤 음식은 날씨가 아니라 기분을 타기도 하는데, 냉면은 분명 후자에 가까운 음식이다. 그리고 연희동에서 삼십 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는 ‘청송함흥냉면본관’은 냉면 중에서도 ‘함흥냉면’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시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보통 한 컵 이상 비운다.

 

 

자리에 앉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육수가 나온다. 요즘 시판 온육수를 대량으로 구매해 사용하는 집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렴 뭐 어떤가. 음식이란 본디 때와 장소만 맞으면 무얼 먹어도 산해진미인 법. 성급하게 마시면 혀를 델 정도로 뜨겁지만, 입안에 퍼지는 미묘한 감칠맛은 사람을 한순간 느슨하게 만든다. 냉면이 나오기도 전에 국물을 한 컵 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일도 부지기수다.

 

 

(새벽에 글 쓰다 보니 또 먹고 싶다.)

 

 

곧이어 냉면과 만두가 나온다. 사진 속 냉면은 회무침이 올라간 회냉면, 그리고 얇게 저민 고기가 올라간 물냉면이다. 회냉면은 얼핏 보았을 땐 굉장히 자극적일 것 같은데, 입에 넣으면 단맛과 신맛이 매우 조화롭다. 면발은 탄력 있고, 회무침은 적당히 쫄깃하고 알맞게 부드럽다. 물냉면도 예사롭지 않다. 소위 ‘마니아’가 돼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는 평양냉면과는 달리, 함흥냉면에는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균형이 있다. 청송함흥냉면의 물냉면은 특히 그렇다. 마지막으로 만두. 직접 빚으신다는 ‘수제 만두’는 냉면에 밀리기엔 아쉬운 메뉴다. 물론 ‘고향’의 맛도, ‘비벼’ 먹는 맛도 좋지만 시판의 맛이 지겨운 날도 있다. 그런 요상한 날에는, 김이 폴폴 나는 수제 만두를 입안 이리저리 굴려 가며 먹고 싶은 날에는 이곳을 찾아오시길 권한다. 육즙이 여느 중식당의 샤오룽바오 뺨치니까. 백석의 시 ‘국수’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연희동 나의 집

 

누군가 내게 삶의 목적에 대해 묻는다면 큰 고민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홈 프로텍터’

 

언젠가 인터넷에서 백수를 일컬어 ‘홈 프로텍터’라고 칭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변변한 직업 없이 방에서 놀고 먹는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뜻이었지만 그 누가 뭐래도, 홈 프로텍터는 고결한 업이다. 요즘처럼 ’쉬었음 청년’과 같은 단어가 화두인 시대에 ’집‘으로의 영구적 귀속을 희망하는 일이 어쩌면 우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집은 누가 뭐래도 대체 불가한 공간이다.

 

 

귀여운 깜고. 열심히 액을 막아준다.

 

 

세상에는 근사한 장소가 많다. 어느 집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다른 집에서는 웅장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 장소는 단연 낡은 빌라의 단칸방이다. 침대와 책상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좁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공간이지만 언제나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곳, 바로 나의 집이다. 허나 제아무리 집을 사랑한다고 한들 불만 하나가 없을까? 절대로 그럴 리 없다.

 

입주 첫날을 떠올리면 가관이다. 저녁에 샤워를 하려고 보니 샤워기 헤드가 부서져 있었다. “설마 뭔 일 있겠어”라며 물을 틀자마자 나는 비 맞은 생쥐처럼 머리에 물을 온통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는 전쟁과도 같은 샤워를 치러냈던 것 같다. 스프링클러를 이용해서 샤워하는 일이 익숙해질 때쯤 멀쩡한 샤워기 헤드가 택배로 도착해 간신히 문제는 해결됐지만 말이다.

 

 

다른 불만을 얘기하기에 앞서, 우리 집에 사는 다섯 친구를 소개하려 한다. 율마, 푸테리스 고사리, 보스턴 고사리, 이오난사, 바질.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낸 루꼴라, 메밀, 그리고 수십 새싹의 바질까지 합하면 과장 조금 보태서 집의 역사가 곧 식물의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한 포기의 새싹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 데에는 매일의 신경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번 문제가 생기면 꽤 긴 시간을 고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화장실 천장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체는 ‘뿌리 파리’였다. 생긴 건 날파리와 비슷한데, 화분의 흙에서 번식하는 녀석들이라고 했다. 처음엔 휴지를 뜯어다가 한 마리씩 잡았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뿌리파리가 화장실 전체에 들러붙어 있는 게 아닌가. 유튜브와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방법들, 그러니까 물에 주방세제 희석해서 분무하기, 다이소 끈끈이, 과일식초로 만든 트랩…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시큼한 과일식초 냄새가 온 집안을 휘감는 동안에도 꿋꿋하게 번식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엄청나게 무력했다. 그 후로도 뿌리 파리 퇴치를 위한 고군분투는 계속됐다. 창틀과 선반에 에프킬라 뿌리기, 끈끈이 함정처럼 배치하기… 결국 효과를 본 의외의 방법은 바로 풋샴푸 ‘발을 씻자’를 화장실 곳곳에 뿌리는 거였다. 바퀴벌레도 퇴치한다는 전설의 항균력을 가진 이 제품은 화장실에서 출몰하는 뿌리 파리의 개체수도 유의미하게 줄여냈다.

 

이처럼 ‘집’에서 뭔가를 키워낸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내 한 몸도 간수하기 힘든 20대 중반의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당장 먹을 아침밥이 없어도 식물 영양제는 사야 하고, 피곤에 찌들어 집에 돌아온 날에도 다음 날 뿌려줄 수돗물은 받아놓고 자야 한다. 아무도 강요한 적 없는 책임감이지만 오히려 그 출처 불명의 강제성이 일상의 원동력이 될 때도 있다.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은 무기력한 날에도 물을 주려면 몸을 일으켜야만 하는, 일종의 생활 관성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욕심도 생긴다. 당장 앞서 말한 ‘뿌리 파리 사태’만 해도 집 안에서 볕이 드는 자리를 찾다가 화장실 창틀에서까지 메밀을 키웠기 때문에 발생한 거다. 생장 속도가 빠른 메밀의 특성상 날이 갈수록 쑥쑥 자랐지만, 그만큼 흙에서 엄청난 수의 뿌리 파리를 뱉어냈다. 결국 나는 한 뼘이 훌쩍 넘게 자란 메밀들을 종량제 봉투에 털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든 생각은 “집이 조금만 더 넓었다면”, “화분을 넉넉하게 둘 공간이 있었다면” 따위의 철없고 아쉬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당장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인정하고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욕심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고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통상 일을 그르친다. 충분히 행복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도, 욕심이 붙으면 불행한 공간이 돼 버린다. 물론 잡초처럼 돋아나는 불평을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그 웃자란 마음과는 별개로 현재를 사랑하면 된다. 사랑에는 흔히 불만이 따라붙고, 어떤 불만의 전제는 지극한 사랑이기도 한 법이니까. 이미 잘 알려진 격언을 비틀어 설명하자면… “불만도 짜증도 없이 살아가는 세입자는 집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원문: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네크라소프-

 

정리하자면, 내게 홈 프로텍터란 단순히 집에 붙어 있는 인간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연약하고 나약한 생명들이 하루를 견디며 서로의 생존을 어설프게나마 책임지는 일.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세계를 끝까지 사랑해 보려는 태도에 관한 말을 하고 싶었다.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함께 버티다 보니 서로의 단점을 껴안게 되는 장소가 바로 ‘집’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아침에 집에서 나왔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로등이 없어서 어두운 계단을 익숙하게 내려갈 것이고, 하루를 견뎌내 약간은 텁텁한 공기를 들이마실 것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열리는 요상한 문을 열고, 여름이면 화장실 타일 곳곳에 피어나는 성가신 곰팡이를 락스로 지워낸 다음에야 하루를 마무리할 테다. 아, 내일 아침에 식물들에게 줄 물을 받아놓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앞의 두 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짤막한 노랫말을 소개하려 한다. 영국의 작곡가가 짓고 미국의 극작가가 가사를 붙인 가곡, ‘Home! Sweet Home!’ 이다.

 

 

환락과 궁전 가운데 거닐더라도

소박한 내 집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네

천상의 매력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듯해도

세상 어디를 찾아도 만날 수 없네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 어디에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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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nimo
    nimo 2026.06.02 00:09

    저도 재활학교 옆 지나갈 때면 항상 돼지 spot을 살피게 되는데요•• =^._.^= ∫
    돼지가 없을 땐 시선을 내려보세요!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들꽃과 귀여운 이파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ദ്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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