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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2026 · 06 · 02

2026 메이저 서울: 신촌, 잿빛 네온 아래의 아르카나

Editor 왕 잔치

 

 

평행, 그리고 굴절 

 

필로스 립아이. 2026. 270 x 390. 종이에 채색. 회화. 

 

경매사: <평행, 그리고 굴절>은 작가가 학창 시절을 보낸 신촌을 단 세 가지 색만을 이용해 표현한 작품입니다. 다양한 색을 쓰지 않고 오직 삼색, 그것도 붉은색노란색, 검은색만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내 눈에는 온 세상이 그렇게 보였다고. 수천, 아니 수만 명에 달하지만 그저 스쳐지나갈 뿐인 사람들. 그렇기에 알 수 없는 암흑의 소용돌이 같은 사람들. 휘몰아치는 인파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뿜는, 다시 말해 온전하게 인식되는 단일한 존재는 너와 나뿐이죠. 이 작품은 신촌 그 자체가 아닌, 신촌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신촌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뒀습니다. 이는 평소 자신의 시선에 포착된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듯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둔 작가의 기존 경향성과 완전히 대비되는 것입니다. ‘포착주의’의 창시자의 지위로부터 탈피하고 새로운 작품 기조로 나아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겼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작품의 핵심은 좌측의 붉은 구조물에 있습니다. 학창 시절 언제나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신촌 한복판의 빨간 잠망경. 이른바 ‘빨잠’이라고 불렸던 그곳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촌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형태를 유지해 온 이 구조물의 영속성에서 본 작품의 골조를 착안했다고 작가는 밝혔습니다. 변하지 않았기에 기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작가는 본 구조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다른 대상과 대비되는 높은 밀도의 채색 및 질감 표현을 사용해 시선의 무게 중심을 자연스레 좌측으로 유도했습니다. 인간의 시선은 흐릿함보다는 선명함을 쫓는 법이니까요. 붉은빛을 선명하게 빛나는 잠망경을 천천히 응시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주위에서 흐릿하게 빛나고 있는 두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토록 화려했던 붉은 선명함도, 관찰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옅어지는 법이니까요.  

 

둘은 현재 맞닿아 있지 않습니다. 마치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평행선의 도로처럼 말이죠. 어쩌면 이는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약속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둘의 도착 시점이 다르다는 것을 붉은 숫자들이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분명 만나게 될 것입니다. 빨간 잠망경의 렌즈가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던 그들의 빛을 굴절시켜 줄 테니까요. 

 

평행, 그리고 굴절이었습니다. 자, 그럼 현 시각으로부터 정확히 5분 뒤인 12시 15분부터 입찰 시작하겠습니다. 입찰 원하시는 분들은 배부된 번호표를 높이 들고 원하시는 입찰가를 제시해 주시면 됩니다. 

 

경매사: 입찰 시작하겠습니다. 입찰가는 일백. 일백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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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신: (가슴에 손을 얹으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아…! 한평생 포착주의적 작품만을 보여주던 작가의 화려한 전환점이로군요! 과거의 그 섬세하고 세밀한 터치의 침착한 재현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바로크 미술을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배경과 인물의 대비를 이토록 현대적으로 해석하다니요. 마치 연극의 조명처럼 쏟아지는 빛으로 ‘너와 나’의 이야기를 담아내다니… 저는 이 역사적인 미술사적 현장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저 쭈신, 일백에 응찰하고 최고가 낙찰까지 달리겠습니다!

 

경매사: 일백 응찰 확인! 현재 현장 일백입니다. 역사적인 현장에 계신 만큼 망치 칠 때까지 긴장 늦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우측에서 일백십 응찰 나왔습니다. 일백십입니다! 자, 최고가까지 달리시겠다던 쭈신 고객님, 일백이십 던지시겠습니까? 

 

쭈신: (초조하게 눈치를 보며) 괜히 크게 떠들었다… (패들을 번쩍 들며 큰 소리로) 쭈신 일백이십 가겠습니다! 제발 더 붙지 마라, 제발… 

 

두깅: 잠깐… 일백 오십이 여기 있.습.니.다.만? 1/3지점 황금비율에 위치한 빨간 잠만경, 그리고 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도로…그것은 신촌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고.난 같달까? (수염쓱) 지금으로부터 스무 해 전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학창 시절이 떠오르오.  이 그림은 ‘너와 나’의 이야기를 넘어 바로 저 **두깅** 의 추억을 담아내고 있소. 아아 그립고 찬란한 옛날이여…(닭똥 같은 눈물을 닦으며) 그런 작품에게 일백이십은 훗. 가치는 그 이상이라네? 150으로 제안하는 바오.

 

경매사: 오오 일백오십. 진짜인지 아닌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두깅 고객님 일백오십 나왔습니다! 

그 이상 없습니까? 그 이상 없다면 일백오십으로 낙찰을…3..2..1..

 

제음: 잠깐!! (안경을 고쳐 쓰며) 흥미롭군요. 신촌을 걷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저 흑백의 기둥들!! 언뜻 보면 건물 같아 보이지만 현생에 치여 살아가는 신촌의 학생들을 회오리치는 원기둥으로 시각화한 것 같군요…. 신촌을 살아가는 ‘우리’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백!!

 

두깅: 이백…??(고개를 절레절레) 아니. 이백십. 10은 우리 모두의 삶을 향한 존경. 210. 이일공. (태연한 표정과 달리 손이 달달 떨린다)

 

제음: (천천히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깅님 손을 떨고 계시는군요…. 크크..저는 이백십에 작품을 보내줄 수 없습니다. 방금 작품이 제게 하는 말을 들었거든요…. ‘제음아, 나를 데려가….’ 오늘 저녁값까지 이 작품에 걸겠습니다!! 이백이십!!

 

전체응찰자: (웅성웅성)

 

경매사: (머쓱하게) 네..아무튼 이백이십나왔습니다.

작품의 부름을 받은 제음 고객님 십 추가 응찰 하셨습니다 더 없습니까? 이 작품을 오늘 저녁 한 끼 가격 차이로 떠나보내실 겁니까?

 

탕!

 

낙찰입니다! 작품은 제음 고객님 품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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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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