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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3 · 05 · 02

384. [잔치는 10살] BACK TO 2014

Editor 량이

 잔치에 뽑히기 전, 신잔꾼이 되기도 전. 마음 속으로 꼭 들어가고 싶었던 잔치의 면접 준비를 하며, 자연스럽게 초창기 잔치의 글을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짧은 생각들이 툭툭 던져져 있고,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귀여운 글들이 쏟아져 있고. 너무나 당연하게 이 때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잔치꾼이라면 한번쯤 가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2014년이면 내가 초등학생 때인데! 그 예전에 잔치를 꾸린, 처음의 잔치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그래서 모셔 보았습니다.

잔치 1기, 덕호 님, 윤지 님, 송 님입니다.

(사정 상 실제 대면 인터뷰는 윤지 님과 송 님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잔치 1기의 멤버들은 어떻게 모인 건지, 왜 이름을 ‘잔치’로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덕호: 잔치의 초기 컨셉은 같은 동네의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떠올린 거였어요. 원래는 둘이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저희 둘만으로는 영상 제작이라거나, 뮤지션 섭외 등 구상한 형태를 구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적합한 사람을 수소문하기로 했어요. 

그 친구가 같은 동아리(창업학회)의 윤지를 소개해줬고, 윤지가 같은 과(신방과)의 다른 두 명, 송이와 정필을 소개해줬던 걸로 기억하고요. 정작 윤지를 소개해준 친구는 다른 바쁜 일이 생겨 같이 못하게 되었고, 저, 윤지, 송, 정필 이렇게 네 명이서 2014년 7월에 본격적으로 기획을 시작했어요. 두 달 동안 함께 첫 아티스트를 섭외하고 영상까지 찍어 9월에 홈페이지 오픈을 했어요.

 

 

잔치라는 이름도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요. 음악과 관련된, 좀 신나는 느낌의 단어를 찾다가 잔치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 같아요. 저한테 ‘잔치’는 어떻게 보면 노는 거였고, 취미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노는 것, 즐기는 것, 다같이…’ 그런 키워드들을 연상하다가 잔치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당시에 우리말로 된 네이밍에 꽂혀 있기도 했고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래도 아직까지 바뀌지 않은 걸 보면 좋은 이름인 거 같네요.

윤지: ‘음악’으로 4명이 모인건데, 덕호님이 기타도 치면서 작사작곡도 하시는 분이었고, 나머지 셋은 과 음악 동아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쳤던 사람들이었어요.

덕호: 음악을 듣는걸 무척 좋아했어요. 무척 어설펐지만, 직접 밴드를 해보기도 했는데 플레이어로서는 영 재능이 없었어요. 꼭 직접 하는게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형태로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서울대의 ‘스누라이브’라는 팀을 알게 되었고, 내가 속한 지역과 학교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고, 이런 이야기를 친구와 하다가 잔치를 구상하게 된 거예요. (잔치 초기에는 스누라이브 팀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어요.)

군대를 가기 전 2010년에 학교 단과대 축제(사림제)에 우연히 참여한 적이 있어요.  당시 공연의 게스트가 ‘밤섬해적단’과 ‘짙은’이었는데요. 둘은 당시에도 이미 유명한 뮤지션이었는데, 언젠가는 그들도 나와 같이 신촌과 학교 근처에서 악기를 메고 다녔을 학생이었다고 생각하니 무척 신기했어요. 그후로 몇년이 지나 잔치를 구상하면서 그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렉앤플레이’나 ‘스누라이브’처럼, 지금 내 근처에서 벌어지는 음악과 관련된 움직임들을 기록해두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의 잔치는 영상 중심의 음악 웹진이었고, 주된 콘텐츠가 연세대와 신촌 근처 뮤지션의 라이브 영상과 인터뷰,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돌아다니는 행인들에 대한 인터뷰(리스너스 오브 신촌)였어요. 

 

당시 잔치에서, 음악의 어떤 면을 특히 다루고 싶었나요?

: 결과물이 영상이었기 때문에 그 음악의 색깔을 잘 살리고 싶었어요. 영상 측면에선 그랬고, 어쨌든 그때 저희가 인터뷰하고 영상 찍었던 분들이, 당시 기준 엄청나게 인기 있었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만의 이유를 갖고 음악하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의미 있었어요. 어려움이 있는데도 이겨내고 하는 에너지들. 그런 것도 매번 좋았죠.

윤지: 공연 영상인 만큼 좋은 음질로 잘 담고 싶었어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죠. 붐마이크도 대여해서 쓰고 그랬어요. 음질이 좋게 담아야 되는데, 카메라 마이크로 담는 건 말도 안 돼서 어떡해야 하나 싶었어요. 합치는 작업도 되게 어렵게, 덕호님이 한땀 한땀 했어요. 야외촬영도 했는데 바람이 안 잡히니까 막 마이크에 양말 씌우고 그랬어요. 음악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예요.

: 하필 흰 양말이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윤지: 진짜 더운 여름날에 유플스 앞에서 찍은 적 있었는데 진짜 더위도 더위인데 시끄러워서 주변 상인들한테서 엄청 항의가 들어 왔었어요.

: 그 아티스트가 ‘너드커넥션’이었어요. 그땐 이름이 ‘적반하장’이었거든요. 그분들 찍는데 그래서 계속 항의 들어오니까 덕호님이 막아 주시고 그랬고요. 너드커넥션이 계속 어딘가에 출연하시니까 더 기억에 남아요.

 

1기 founder들만이 기억하는, 잔치 운영 중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즐거웠던 일이든, 위기의 사건이든 뭐든 좋아요.

덕호: 저 개인적으로는 14년 11월에 있었던, 잔치의 첫번째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윤지: 맞아요, 1년 정도 지났을 때엔 취재한 아티스트 수가 꽤 되다 보니까 그분들 모아서 공연을 했죠. 말그대로 ‘잔치’를 벌인 거예요. 아티스트들을 초청하고, 친구들 초대해서 공연도 하고 굿즈도 팔고 그랬어요. 이분들께서는 아직 활동하고 계세요. 김므즈 씨도 음악 중이시고, Line & Linear도 한 유명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고 계시고, 타이탄도 다른 밴드 이름으로 유명 지상파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셨었어요.

오리지널 잔치(음악) 때 되게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요. 저희를 거쳐갔던 아티스트들이 꽤 유명해진 경우도 많아서 신기하고, 다 20대 초반에 비슷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직접 취재도 하고 공연 영상도 찍고, 인터뷰도 남기고 해서 정말 뜻깊고 재밌었어요.

 

공연 기획과 진행을 하셨네요. 같은 잔치를 하셨지만, 지금의 저희와는 정말 다른 활동을 하셨던 것 같아 신기합니다.

윤지: 네, 그러네요. 저는 로고도 디자인하고… 아티스트 인터뷰, 영상 촬영, 공연 등 첫 기획의도와 맞게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많이 했어요.

: 정말 그렇죠. 전 글을 쓴 적이 없어요. 영상 촬영, 편집을 많이 했죠.

윤지: 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잔치 웹페이지 ‘:D’ 카테고리의 ‘잔치꾼들에게’는 잔치의 중심을 ‘음악’에서 ‘신촌’으로 바꾸는 변화를 겪으며 제가 쓴 글이에요. 2015년쯤, 잔치의 범위를 신촌으로 넓혀야 된다고 팀원들을 엄청 설득했어요. 잔치의 고유성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범위를 넓히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때까진 정말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각자의 돈을 십시일반 모아서 활동했거든요. 학생이 돈이 어딨어요. 용돈 쪼개고 쪼개서 뭔가 하는데… 다들 힘든 거예요. 펀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신촌으로 주제를 정하면 ‘지역 기반’의 프로젝트로 내세워 서대문구청의 지원을 받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방향을 바꾸고 서대문구청이나 ‘최게바라 기획사’ 등의 문화기획사의 지원을 받았었어요. 덕분에 활동 자금 뿐 아니라 매주 커피 값을 들이지 않고 모일 수 있는 회의 공간도 지원 받았었죠.


2016년 2월 21일, 잔치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며 윤지 님이 남긴 글. 

 

그런 분기점이 있었군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며, 인터뷰이나 가게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섭외 대부분을 담당하셨던 덕호 님의 기준을 떠올려 보자면… 어쨌든 음악에 특이한 점이 있는 사람들. 자작곡을 만드시는 분들을 찾았었어요. 자기만의 음악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저번에 냈던 분들과는 다른 장르를 찾고요.

윤지: (잔치의 주제를) 신촌으로 확장하고 나서는 선정 기준이 더 명확해졌어요. 그 당시 학생 입장에서 바라본 신촌은 가게들이 엄청 자주 바뀌는 곳이었죠. 좋아했던 오랜 가게들이 얼마 안 지나서 사라지고, 그런 소식 들으면 엄청 상심하고.. 우리가 사라지는 공간을 막을 순 없으니 아예 사라지기 전에 잔치가 이 추억이 담긴 공간들을 아카이빙하자! 해서, ‘신촌’하면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가게들을 취재했어요.

프랜차이즈가 많아진다고 해서 그런 곳을 인터뷰 하진 않았고. 되게 오래된 가게나, 사장님이랑 엄청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는 가게나. 그런 장소 위주로 했었어요. 어떤 곳, 어떤 분을 섭외하든 간에 신촌의 느낌이 살아있을 수 있도록요.

 

당시 만든 아티스트 콘텐츠 중,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나 콘텐츠가 있을까요? 

: 당시에 이름이 ‘쥬마루드’셨고, 현재 ‘카코포니’로 활동하시는 아티스트요. 이 분 전까진 풀 세션 밴드로 영상을 찍었는데, 거의 이분이 처음으로 피아노랑 목소리만 가지고 촬영했어요. 그래서 음악도 미니멀했었죠. 그런데 이분이 가진 스토리도, 음악도, 비주얼도 엄청 압도하는 느낌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캠퍼스에서 몇 번 마주쳤었는데, 음악은 엄청 파워풀한데 마주치면 수줍수줍하신 분이셨어요. 음악 스타일이랑 퍼스널리티랑 차이가 있었는데 그런 점이 신기했어요.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 볼 일이 없으니까 그 사람이랑 음악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직접 만나러 갔을 때 음악과 실제 모습의 갭이 있는 게 되게 기억에 남아요.

윤지: 저는 ‘김므즈’. 그때 이후로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연락하는데, 노래가 정말 좋아요. 장소 섭외, 촬영까지 다 기억이 나요. 대관해서 인터뷰하고, 김므즈 님의 노래와 분위기가 공간이랑 너무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타이탄’! 이건 와, 한강에서 찍었거든요? 영상 촬영이랑 편집을 제가 했는데 한겨울이라 너무 추웠어요. 근데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영상이라 그런지 기억에 남네요.

한강에서 촬영한 ‘타이탄’의 잔치연세 라이브.

 

이런 감성 넘치는 오리지널 잔치에서 활동하신 두 분이 현재 어떤 일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 졸업하고 유튜브 영상 쪽 일을 했어요. 그거 하다가 코로나 터지고 나서 조금 인생의 정리가 필요하다 싶어서 접고 지금은 앱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는 중이에요. 비주얼적인 걸 계속 좋아해서요.

윤지: 싱어송라이터예요. ‘실린더’라는 듀오로 활동 중입니다. 두 개의 음원도 있고요. 정식 앨범을 내려고 열심히 작업 중이에요. 본캐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랍니다.

Winter Theater (겨울 소극장) · cylinder


잔치를 만들고, 운영했던 경험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의 시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잔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윤지: 대학생 때 무언가를 처음 만들고, 실행하고 되게 좋은 친구들하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만난 사람들끼리 모인 거였다 보니 그때 만들어진 음악과의 연도 정말 소중한 듯해요. 지금 그때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과 계속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저희끼리 모이면 잔치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나의 철없는 시절을 같이 공유한 사이다 보니까 나이가 서른이 되고, 서른이 훨씬 넘어도 그때 모습, 서로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있는 게 좋다는 얘기도 해요. 활동 자체도 의미 있었고, 서로 잔치꾼들이라고 부르잖아요. 잔치꾼들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지 않나 싶어요.

 

이런 경험은 오직 잔치였기에 있었다! 하는 경험이 있을까요?

윤지: 그땐 음악이라는 꼭지가 있었기 때문에 잔치여서 할 수 있었던 게 음악 관련도 많았던 거 같고 잔치를 함으로써 신촌에 더 주의를 갖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신촌에서 대학생활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잔치를 하면서 신촌이라는 공간에 더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아요.

: 잔치를 아예 안 했더라면 신촌을 그냥 내가 다니고 있는 공간임에도 신촌의 보편적 이미지로만 생각하고 끝났을 것 같은데, 활동하면서 이곳저곳 들여다보고 그래서 뭔가, 진짜 신촌이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걸 체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윤지: 신촌이 유동 인구도 많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알 일이 없잖아요. 각자의 비즈니스로 모이는 장소인데. 좀 더 신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랜덤하게 신촌에서 꽃을 들고 가는 사람들 인터뷰를 한 것도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 생활을 신촌에서 한다고 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고,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건데 그런 스토리를 직접 취재하고, 앎으로써 공간에 대한 맥락을 쌓을 수 있는 게 잔치여서 할 수 있는 경험인 것 같아요.

 

최근 신촌에서의 눈에 띄는 변화를 느낀 적도 있으신가요?

윤지: 오늘은 늦어서 뛰어오느라 글쎄…

: 제일 눈에 많이 들어오는 변화는, 인생네컷이 진짜 많아졌다는 거요. 또 ‘차 없는 거리’가 된 거요. 연세로도 그냥 어떤 공간의 느낌으로 존재했는데, 이젠 그냥 도로가 돼 버린 게 와닿네요. 그리고 몇 년 전에 비해 그냥 모든 가게가 좀더 팬시해진 듯해요. 몇 년 전엔 아무 색깔도 없는 프랜차이즈로만 가득했다가 오히려 몇 년 전보단 좀더 예뻐진 거 같아요. 요새 전체적인 트렌드 자체가 좀더 캐릭터적이거나 로컬함을 살리는 시류니까, 역시나 신촌도 그 흐름에 껴 있지 않나 싶어요. 

 

지금 당신들에게 신촌은 어떤 의미의 공간인가요?

윤지: 신촌…

: 아까 윤지 님이 잔치꾼들 보면 철없는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는데, 저에겐 ‘신촌’ 자체가 ‘철없는 시절의 나’인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윤지: 맞아. 대학생활을 했으니까.

: 맨날 밥 먹고 동아리 활동하고, 술집 그냥 맛도 없는 안주 맨날 먹으러 가고 같이 있고 그랬던 게. 저도 연희동 서문에서 꽤 오래 했거든요. 취직하고 나서도 1년 반은 여기 신촌에 살았어요.

윤지: 저에게 마음의 고향. 그렇게 멀리서 오는 것도 아닌데도. 신촌 가는 버스 타고 신촌에 내리자 마자 느껴지는 고향의 냄새가 있어. 그때만 할 수 있었던 것들도, 그때만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도 다 생각나고요.

올 때마다 ‘어, 여기 아직도 있네’ 식의 생각을 해요. 사실 어딜 갈때마다 그렇게 체크하는 동네 없잖아요. 워낙 잘 아는 곳이었다 보니까, 어렴풋이 이 곳의 역사를 다 알고 있는 거잖아요. 할리스나 신촌 나무카페 등등… 맨날 새벽에 밤 새고. 인테리어 구려도 갈 데가 없으니까. 그런 추억의 장소들이 있죠.

: 저는 고삼이! 찐 맛집.

윤지: 저는 파이홀!

: 파이홀 위치가 거기가 아니었는데. 저희가 다닐 때는 굴다리 쪽에 있었어요. (지금은) 확장해서 넓힌 거예요. 제가 파이홀에 300번은 갔거든요. 그때는 여기 독다방 너무 비싸다고 느꼈는데 이제 내가 바뀌어서 괜찮더라고요.

윤지: 아니야 이거 칠천 오백 원, 팔천 원이잖아.

: 그래도 그땐 비싸서 아메리카노만 사 먹었어.

 

활동하실 때만 해도, 10년 후 잔치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시기는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고, 다음 기수에게 물려지면서 분위기 등이 매해 조금씩 바뀌니까요. 신촌과 함께 10년이란 세월을 보낸 지금의 잔치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윤지: 10년전에 낳아두고 못 본 자식이 잘 커서 만나게 됐어. 친구들도 많아. 나보다 더 성공했어.

: 전에는 우리가 아티스틱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면, 이제 잡지 자체가 아티스틱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에디터분들 스스로의 주제의식도 더 살아있는 것 같고요. 

 

최근 잔치 콘텐츠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 잔치 웹진에 떠 있는 뉴진스 할배 글을 보고, 너무 미디어 전공의 관점 같긴 한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 신촌 ‘셀레브리티’의 범위가 달라졌음을 느꼈어요. 유튜브, 릴스 스타가 신촌의 스타가 되는 구나. 이전에는 특정한 공간에 계신 분이라던가, 학교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를 통한 사람을 취재했는데 이젠 미디어적으로 접근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윤지: 그때 당시에 미디어에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빨잠 앞에서 항상 고양이 탈 쓴 알바가 있었는데 그 사람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저 탈 뒤엔 누가 있을지 궁금하다고 페이스북에서 되게 바이럴 됐었죠. 다시 생각하니 포맷이 뉴진스 할배랑 비슷한 식인 것 같아요.

 

그럼, 10살을 맞은 잔치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윤지: 잘 컸다…!

: 멋지다…!

 

2023년 4월 27일 목요일, 인터뷰를 마친 뒤 신촌 포토시그니처에서


즐거웠던 1기 잔치꾼과 현 잔치꾼들의 만남이 끝났습니다. 인터뷰 후 당시 영상을 다시 확인하니 어떤 감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는지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23년. 올해로 열 살이 된 잔치는 처음과 소울을 공유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부분 변화해왔습니다. 앞으로 또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잔치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떻게 신촌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을까요? 

그때의 인터뷰에 뭐라고 답할지 잔꾼들 모두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D    

 

 

 

 

Behind story

당시 인터뷰했던 분들이나 들렀던 가게 중, 근황이 궁금한 사람/장소가 있으신가요?

: 와, 난 파이홀 사장님.

(저희가 대신 근황을 여쭤봐 드릴게요. 궁금한 점 있으신가요?)

: 십몇 년째 파이를 만들고 계시는데 지금쯤 지치지 않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윤지: 근데 맨날 파이 없어, 다 팔리고.

: 그럼 안 지치시겠다.

 

 

글: 량이, 연두

인터뷰: 쿠이, 우주먼지

사진: 감사한 1기분들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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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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