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 사람, 연희
#4. 롱보트스모커
한 동네의 향이 어쩜 이리도 이채로울 수 있을까. 흰 종이와 검은 잉크의 냄새가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을 나와 도로 하나만 건너면 입구에서부터 은은한 나무 향이 풍겨오는 가게를 만날 수 있다. 포근함과 매캐함 사이의 묘한 내음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선한 인상의 사장님 부부께서 필자를 맞아주신다.

연기 냄새를 맡고 한 번, 커다란 연어 조각을 보고 또 한 번 쳐다보다가 결국 들어가게 되는 마성의 가게다.
“처음 오셨어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앞에 각종 훈제 연어와 먹음직스러운 크림치즈가 놓인다.

열띤 목소리로 연어와 훈연에 대해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푸른 눈에 불꽃 같은 열정이 가득하다. 조금씩 잘라주신 맛보기 조각을 입에 넣자, 그을린 나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풍미와 알맞은 염도가 혀끝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필자는 멋진 저녁 식사를 할 요량으로 핫-스모크드 연어 한 토막과 훈제 연어가 든 크림치즈, 그리고 살짝 매콤해 파스타에 넣기 안성맞춤이라는 페퍼잭 치즈를 샀다. 사장님과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찰나, 가게를 방문한 또 다른 손님을 만나 말을 걸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연희동에 사시나 봐요.
저는 강북 살아요. 연희동에는 친구 만나러 왔어요.
저는 연희동에 사는데도 이 가게에는 처음 와보는데요, 평소에 자주 오시나요?
아뇨, 오늘 처음 와 봤어요. 친구랑 종종 와인을 마시는데, 오늘은 뭐랑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근처에 연어를 파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와 봤어요.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그렇게 자주 여는 가게가 아니더라고요*. 일주일에 사흘, 그것도 오후 시간대에만 연다고 하던데 오늘 딱 시간이 맞아서 오게 됐네요.
*롱보트스모커의 영업시간은 ‘금, 토, 일(14:00~20:00)’ 단 사흘이다. 방문할 예정이라면 참고하시길.
가게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사실 특별히 어떤 걸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사장님께서 너무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연어의 어떤 부위가 맛있고, 좋은 훈제 연어를 고르는 방법이며 이 가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식에 관해 설명해 주시니까 이것저것 안 살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멋진 곳이었어요.

사장님의 말씀에서 기억나는 사실 하나만 적어 보자면, 연어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뱃살도, 꼬리도 아닌 ‘척추(Loin)’다.
그리고 부부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것 같은데, 가게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맛보기로 주신 연어를 먹어본 다음에는 “아, 근거가 있는 자부심이었구나.” 싶었죠. 몇 개는 정말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이어서 신기했고요.
저도 아까 한 조각 먹고 깜짝 놀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가게가 자주 여는 곳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오래 열지도 않고요. 그런 불편함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오늘 다녀온 감상으로는 부부 사장님 간의 케미가 너무 좋고요, 찾아오는 누구든 단골이 되게끔 하시는 서비스와 매너를 갖추신 것 같아요. 괜히 영업시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딱 집중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간만 일한다.”와 같은 느낌이 드는 가게여서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이 정도 맛있는 연어를 먹으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닐까요? (웃음)
“불편함도 감수할 만한 것이 된다”라는 것도 연희동만이 가진 특색인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연희동을 잘 알기 전에는 그냥 홍대 근처에 있는 조그만 동네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너무 매력적인 동네더라고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영업시간은 약간 들쭉날쭉해요. 하지만 저에겐 그 자체가 연희동의 콘셉트처럼 느껴져요. 기대하지 않고 찾아갔을 때 열려 있다면 ‘행운’ 같기도 하고, 설령 닫았더라도 대신 찾아갈 만한 좋은 가게들이 많아요.
저도 연희동 주민이지만, 사실 오고 가기에 편한 동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골목도 좁고, 경사도 급하잖아요. 그럼에도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요.
저는 사람이 많은 곳은 싫은데, 사람이 몰리는 곳들이 갖는 특색은 좋아해요. 공간과 소품의 아기자기함이나, 소위 ‘힙’한 것들 말이에요. 그러한 수요를 충족해 줄 수 있는 동네가 바로 연희동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연희동은 교통이 편리한 것도 아니고, 찾아오려면 만원 버스를 타야 하지만 그럼에도 골목 골목은 되게 조용해요. 주변의 홍대나 연남처럼 막 사람이 몰리지도 않고, 아직 외부에 많이 공개되지 않은 가게들도 많아서 찾아내는 재미도 있고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맛이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연희동이 이동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동네라고 생각해요. 제가 괜히 자주 오는 게 아니라니까요. (웃음)
훈연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조리 기법이다. 적절한 나무와 적당한 온도, 알맞은 습도를 찾아 오랜 시간 동안 연기를 쐬어야 한다.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점도 한둘이 아니지만, 잘 훈제된 연어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의 풍미에는 그 어떤 말로도 완벽한 설명이 불가할 정도의 감동이 있다. 그런 점에서 롱보트스모커의 연어는 연희동과 닮아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에디터님의 연희동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라 더 즐겁게 읽었네요. 속도에 치여 살기 바쁜 요즘 연희동 같은 곳이 더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느림의 미학이 그리워질 때쯤 찾아가 봐야겠어요 ㅎㅎ
관통하는 주제, 쓰이는 단어들에 대한 깊은 사유가 느껴짐과 동시에 물흐르듯 진행되는 잔잔하고 가벼운 템포의 인터뷰들이 연희 그자체를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정말 오랜만에 제가 잔치에 있을 때 행복하고 치열하게(아무도 치열하라고 하진 않았으나) 글을 쓰던 모습이 생각나게 하는 글을 만난것 같아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글 정말 정말 좋아요…. 취향저격… 오래오래 잔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