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유솔미, 에디터 찬란
연필을 닮은 사람이 있다. 스스로 재료가 되어, 보고 느낀 것을 그려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작자들. 뭉툭한 흑심으로는 세세하고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 수 없음에 가장 먼저 싫증을 느끼고 날카로이 자신을 깎아 내는 이상자들. 구태여 아파하며 하나의 화폭을 만들고 묘한 자기만족의 웃음을 짓는 변태들.
미련한 자기파괴처럼 보일지라도 그들만큼은 안다. 그만한 자기방어와 자기만족과 사랑은 없다는 것을. 그 앞에 서 있으면 왜인지 구체적이고 세세한 모습을 꺼내놓아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선명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깎아 낼 의지란 귀하고도 강하니까.
“너무 자기를 깎아냈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솔미의 표정이 평소보다 낮고 지쳐 보인다. 무슨 일 있냐는 걱정에 그녀가 답했다.
“아… 엠티 뒤풀이 다녀와서 좀 피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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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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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티 뒤풀이라는 말을 나는 평생 들어본 적 없다. 새벽까지 진탕 술을 먹는 엠티에 대체 왜 뒤풀이가 필요한 것인가. 애주가인 나로서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합성어다. 무엇이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무구한 표정으로 앉는 솔미란 웃길 수밖에.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다는 핀잔과 격려로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반갑습니다. 저는 유솔미라고 하고, 잔치에서 에디터 ‘찬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찬란이란 이름의 간략한 소개를 듣고 싶어요.
저는 찬란이란 단어를 여러 이유로 좋아하는데요. 예전에 김이나 작사가 책에서 찬란하다는 것이 찰나의 빛나는 순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 공기, 분위기를 내포한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한순간보다는 더 넓은 시공간을 아우른다는 개념이 좋더라고요. 그 이후에 나상현씨밴드의 ‘찬란’이라는 노래도 좋아하게 됐고요.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이름으로 불리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지어봤습니다.
오랜만에 뵙는데 근황이 궁금해요. 엠티 뒤풀이…말고도 어떤 것들로 시간을 채우고 계셨나요.
이제 그 사람들이랑 그만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우선 독서모임에 정말 열심히 나가고 있습니다. 꾸준히 책 읽고 글도 많이 썼어요. 독서모임에서 글쓰기와 합평을 같이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서로 글을 나누면서 계속 얘기하고, 에세이든 소설이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아, 이제 곧 신입생 오티라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기도 해요. 봉사도 다녀왔고요. 강원도 원주의 아동센터에서 일주일 정도 수업을 진행하는 활동이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에너지가 장난 아니게 넘치시네요.
요새는 체력이 딸려서 정신력과 생명력을 까먹으면서 사는 것 같긴 해요. (씁쓸한 웃음)
오티하니, 새해를 맞아 새내기에서 정든내기로 거듭났잖아요. 찬란은 스무 살이라는 순간에 많은 상징을 담고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해요. 스무 살이 어떻게 지난 것 같은지,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 궁금하네요.
저의 스무 살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과잉되었다고 생각해요. ‘역대급이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처음 해본 경험도 많았고, 그만큼 느낀 감정과 사유도 무척 다양하고 깊었어요. 고3 때는 힘들고 딱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서울에 와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다 보니 뭐든 과하게 했던 것 같아요. ‘서대문05’ 글에 스무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적나라하게 담아놨거든요. 그것들을 충족할 만큼은 살았다고 생각해요.
좋은 경험, 또 그만큼의 힘든 경험을 쌓으면서 확장되는 것 같네요. ‘순간’, ‘찰나’ 같은 개념을 글에 많이 녹여낸 에디터였다 보니 궁금한 게 있었어요. 매일매일을 새롭게 갱신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인지, 과거의 순간들을 계속 누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인지.
따지자면 반반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눈앞에 놓인 것에 충실하자는 주의고, 그 충실함이 모여서 선물 같이 다가올 순간이 있다고 많이 믿어요. 저는 순간이 정말 많은 걸 바꾼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잔치에서 첫 웹진 글을 쓰고 업로드 예약 버튼을 누른 그 순간의 행복감이 저를 계속 글 쓰게 만들어요.
한순간을 강하게 느끼는군요.
맞아요. 또 다른 예로 유니콘 에디터가 제 ‘찰나의 호흡’ 글에 피드백을 남겼는데요. 그걸 읽던 찰나를 잊지 못해요. ‘글 쓴 사람의 문학적 레퍼런스가 풍부한 것 같다’라는 얘기였는데, 그걸 읽었던 순간이 계속 문학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찰나에 지나가는 순간을 딱 잡아서 그 힘으로 긴 시간을 살아가는, 순간의 힘을 믿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귀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잠깐 언급하기도 했는데 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 중 가장 활자중독에 가까워요. 블로그나 인스타에도 거의 매일 양질의 글이 올라오고요. 어떤 책들을 얼마나 빈번하게 읽는지 가장 먼저 궁금해요.
일단 저는 소설 중독이었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고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일 것 같은데, <제인 에어>라든지 <오만과 편견> 같은 걸 읽었어요.
초등학생 때…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샬롯 브론테 이런 것 있잖아요. 그런 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영미 문화권의 번역투 문장을 좋아해서 아직도 제 문체에 남아있기도 하고요. (웃음) 중고등학교때부터는 현실 도피를 위해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소설의 세계에 빠져있으면 학업이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자책을 덮을 수 있었거든요.
최근 몇 년 동안은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최은영 작가님을 좋아해서 <밝은 밤>을 여러 번 읽었어요. 고3 때는 시간이 없으니 발췌독하면서 좋아하는 문장을 계속 읽었고요. 또 <내게 무해한 사람>도 좋아하고, <애쓰지 않아도>도 좋아요. <쇼코의 미소>는 너무 유명하니까 아시죠?
(조금의 광기 어린 얼굴이 드리운다)
다는 못 읽어 봤지만 저도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왜 특히 <밝은 밤>을 좋아했는지 궁금하네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경험을 쌓는 게 저의 행복이었는데, 고3때는 아무래도 자신에게 집중할 시기다 보니 그러지 못했어요. <밝은 밤>에는 사람 이야기가 굉장히 생동감 있게 펼쳐지거든요. 인물들 하나하나의 말도 주옥같고요. 그런 것들이 저의 목마름을 충족해줬던 게 아닐까 싶어요.
찬란에게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저는 비슷한 이유로 이슬아 작가를 좋아하는데요. 초라하고 이상하고 별거 아니라고 쉽게 평가되는 위치의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그분의 묘사를 거치면 사랑스러워지고 애틋하고 생동감 있게 변모해요.
맞아요. 내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겠다고 생각하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에요.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짚지 못하겠는데, 그냥 꾸준히 글 쓰고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렇지 않은 나는 내가 아닐 것 같아서 읽고 쓰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해요.

찬란이 스토리에 올렸었던 문장이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슬아 작가가 이훤 시인에게 왜 시를 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죠. 못 쓰면 가능한 일들만 남을 것 같다는. 결국 자기가 그리는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활자중독녀씨.
(폭소) 맞네요. 그렇게 보면 활자 중독이란 말이 나쁘지 않네요. 마음에 드는데요? 그래서 남의 글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운영진분들이 잔꾼은 에디터이자 잔치의 애독자라고 얘기했었는데 많이 공감했었죠.
누군가의 소리를 열심히 보는 자세, 배우고 싶어요. 본격적으로 자기 글을 쓰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요.
딱 잘라 말하긴 어려운데, 작년 여름 정도부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오글거린다는 말을 무서워하거든요. 개인의 감성 같은 면모를 오글거린다는 말로 뭉뚱그리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요. 저는 세세하고 세심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래서 그런 평가를 받기 쉬운 공공연한 글을 쓰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북엔드’라는 독서 모임에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 만난 좋아하는 친구가 글을 올리는 거예요. 그전에도 소신 있고 멋있는 친구였는데, 글을 쓰는 걸 보니 더 좋아졌죠.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모방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했고 글 쓰는 게 마음에 들어서 잔치까지 찾아오게 됐습니다. 운명적이죠.

북엔드에서 합평도 하고 있잖아요. 글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은데,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요.
저는 정말정말정말 생각이 많고 그걸 감당하기 힘들어해요. 글쓰기는 그것들의 배출구 같은 느낌이고요. 사실 생각을 말로 뱉는 것엔 한계가 있잖아요. 추상적인 감정 덩어리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순식간에 가져와서 말을 한다는 게요. 어휘력의 한계를 매번 느끼거든요.
글은 생각을 거친 다음에 가장 맞닿아 있는 표현을 신중하게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효율적인 배출구라고 할 수 있죠.
정확히, 많이 표현하는 게 중요한 사람 같아요. 재밌는 건 “표현하는 건 온당하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겁이 많아서 은유 뒤에 진실을 숨긴다. 그걸 뚫고 오는 사려 깊은 누군가를 수동적으로만 기다린다”고 블로그에서 말했죠.
(웃음) 남이 읽으니 괜히 부끄럽네요. 저는 타인과 어려움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동시에 그걸 드러내는 게 순진하고 취약하고 어려 보일까 봐 경계해요. 그 균형을 잡기가 참 어렵고요. 표현하는 게 온당하다는 말은 결국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같아요.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떻게 보면 귀여운 거죠. 고고한 척은 다 하면서 사실은 위로받고 싶은 마음.
블로그에 올린 ‘안녕 고찰하기’라는 글이 떠올라요. “우리는 당연한 과정에서 무심코 무엇인가를 빼버린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는데, 찬란이 말했던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뭉뚱그리지 않고 세세하게 느끼고 싶다는 말이요.
그건 글쓰기가 힘들었을 때 썼던 글이에요. 무기력한 시간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런 세상에 대한 한탄에 가까운 글이죠. 말했듯이 저는 감정이든 경험이든 상황이든 모두 예민하게 감각하고 싶거든요. 모두 세심하고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으니까. 그것들을 뭉뚱그려서 툭 던져버리는 행태가 안타까웠어요. 맥락과 상황을 고려 안 하고 사람을 단일적으로 재단해버리는 것들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모든 걸 감각할 수 있는 세심함과 예민함을 지키려면 단단해져야 한다, 지키는 단단함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

저도 모든 걸 이해하고 싶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거든요. 세밀히 이해한다는 게 바라는 이상이기도, 재밌는 놀이 같기도 해요. 그러는 게 결국 별난 내 세상을 지키는 일이더라고요.
맞아.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는데요. 최근 잔치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경험이 있어요. 예전 룸메이트 언니가 어떤 블로그 글을 캡처해서 보내줬어요. 위 학번 이대생의 블로그였는데, ‘서대문 05’ 를 읽고 난 감상과 함께 본인 이야기를 쓰셨더라고요.
정말 온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그 글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기도 하고 솔직하고도 적나라하게 썼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본인의 과거 생각이 많이 떠오르고, 본인 생각과 비슷해서 여러 번 읽어봤다고 하신 거예요. 제 글 덕분에 자주 걷는 그 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대요. 오히려 제가 위로를 많이 받은 기분이었어요.
작가로 데뷔하셨네요.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바라는 순간이잖아요. 글 얘기를 참 많이 했는데 사실 그림도 그리고 계시죠. 언제부터 그림에도 손을 대신 건가요?
그림은 정말 얼마 안 됐어요. 지난 가을이나 겨울쯤. 스케치는 따로 안 하고 손 가는 대로 그리고 있죠. 심오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무력감, 행복함, 우울함 같은 강렬한 감정이 생길 때가 많잖아요. 생각은 많고 표출은 하고 싶은데 글쓰기는 너무 힘들고 귀찮을 때 주로 그림을 그려요.
이렇게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 더 표현할 게 남아서 그림을 그리는 건가 싶었어요. 그렇다기보단 여분의 배출 수단에 가깝네요.
치열하게 많이 사유하고 싶으면 글을 쓰고, 비우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싫더라고요. 예전엔 유튜브, 넷플릭스로 꽉 찬 삶을 살았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쇼츠 안 본 지도 정말 오래됐고요. 지금의 저에게 가장 큰 도파민인 것 같아요.

명확한 그림이 아닌 이유가 있군요. 치열한 고민보단 명상의 흔적에 가까우니.
맞는 것 같아요. 의미를 담으면 담을수록 더 설명적으로 되는 것 같아서, 의미를 덜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 방향으로든 원하는 만큼 표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혹시 다음 학기에 써보고 싶은 방향의 글이 있을까요.
지원했을 때 썼던 글과 관련이 있는데요. 저희 엄마가 신촌에서 어린 시절을 오래 보내셨어요. 이모할머니도 미용실을 하셨고 외할머니도 근처에서 일을 하셨고요. 그래서 그레이스 백화점이라든지, 이마트가 있던 자리에는 원래 뭐가 있었다는 식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안개가 뭉개뭉개 해서 봤는데 대학생들이 할머니가 일하시던 미용실 위층에 숨어있다는 일화도 있었고요.
신촌의 역사를 들은 느낌이라 당시에 속기를 해놓았는데, 거기에 자료조사를 더 해서 글을 써보고 싶어요. 사실 신촌은 대표적인 대학가이고 투쟁의 역사를 안고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이 지역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입하의 ‘바위처럼’이라는 글을 보고 나눴던 얘기이기도 한데 정치적이라고 해야 하나… 용기 있게 도전적인 글감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완벽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주제를 다루는 용기랄까요.
다른 에디터들의 글이 이런 생각의 이정표가 된 것 같아요. 저마다의 차이와 다름을 섬세하게 전달하려는 글들이 기억에 남았거든요. 이번 학기 글에선 유화 에디터의 ‘눈으로 듣고 마음에 새기는 말’과 유니콘 에디터의 ‘몸에 새기는 리듬’이 그랬어요.
독자로서 기대가 많이 됩니다. 올해는 어떤 순간들을 도전적으로 쌓아가고 싶은지 궁금하네요.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걸 고민해봐야 할 시기인 것 같아서 많은 활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왔거든요. 그 경험이 단순히 경험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뭐 하나를 하더라도 스펙 한 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삶 전체로 확장해서 봤을 때 소중했던 한순간으로요. 나눴던 대화, 그중의 한 마디까지도 소중하게. 그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걸 위해서 제 예민함을 지킬 힘이 필요하겠죠. 꾸준히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공통 질문드릴게요. 지금 순간을 나타내는 인생곡이 있을까요?
나상현씨밴드의 <찬란>이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은유를 좋아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되게 직관적이거든요. 무뎌짐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에 찬란하게 빛나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가사인데 너무 좋았어요.
빛나는 사랑의 순간을 노래한다는 게 엄청 순진해 보이잖아요. 풍파와 수모를 안 겪어본 것 같고. 근데 저는 부서질 만큼 부서져 본 사람이 사랑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걸 정말 좋아요. 이 밴드도 대학교 동아리에서 시작해서 코로나까지 무척 힘든 시기들을 겪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밴드가 노래하는 건 항상 사랑일 거라고 명백하게 얘기하는 게 너무 와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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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기 어려운 대화가 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어느 한 곳이 끊어지면 전체의 작동이 버벅거리게 되는. 그런 이날의 대화를 온전히 담을 수 없어 아쉽다. 순간의 기억으로 바뀌어 흩어진 말들이 아른거린다.
능력의 한계를 한탄한다 한들 별 수 없다. 언젠가 찬란의 방식으로 그들이 표현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능한 일이다. 순간의 힘을 믿는 그녀라면 분명히 가능한 일이기에, 새로운 찰나를 기다리며 마음을 달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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