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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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 · 11 · 10

165. 고별전: 신촌 컬렉션

Editor 챌라또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출발한 걸까.

 

죄책일까, 사랑일까.

 

죄책이어도 그만, 사랑이어도 그만이려나. 

 

 

가끔은 무언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홀라당 까먹어버릴 때가 있다. 받음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 그렇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행위가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전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내가 받고 향유하는 것들이 삶 속에 완전히 스며들어 척- 하고 달라붙는 순간, giver는 깨끗이 사라지고 taker만 남는다. 받았으나 누구에게 받은 줄 모르고, 그렇기에 ‘덕분에’ 가졌으나 감사해하기는 글러버린 아이러니. 

 

그래서인지 엄마의 안부 전화는 자꾸만 부재중

 

마음은 참 간사하다. 많은 걸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당연해지고, 오래 쌓일수록 자꾸만 가벼이 여기게 된다. 특히 그것이 보이지 않거나 셀 수 없는 것들이라면 더더욱. 우리네 지갑에 동전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임에도 같이 마신 술 값은 1원 단위까지 나누어 계산하지만, 가까운 내 편이 전한 안부나 위로는 그 가치를 헤아리는 법도, 다시 송금할 방법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걸 받은 만큼 귀하게 여기고 언젠가는 돌려주려는 마음가짐으로 살면 될 텐데. 쉽게 쓰인 문장과는 달리 거울엔 자꾸 배은망덕한 얼굴이 떠오르고, 그 얼굴을 분간하는 눈은 점점 흐릿해지는 것만 같아 열이 난다. 적응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없는 인간의 삶이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인생에는 익숙해지기도 당연해지기도 싫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당연해진다는 건 아마도 잊는다는 것이겠지.

 

신촌에게 무언갈 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꼬박 사 년 남짓의 시간 동안 매일같이 누볐고, 햇수로는 두 해를 꽉 채워 이 곳에 대한 글을 썼지만 말이다. 분명 신촌이 좋아서, 그리고 그 안에서 숨쉬는 내가 평소보다 좀 더 행복해서, 그래서 신촌의 공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렇게 열 댓 편의 글이 2년에 걸쳐 세상에 나왔고, 그 안엔 수많은 생각과 가치, 변화와 다짐, 그리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차곡차곡 빠짐없이 담겼는데 – 마음이라는 게 참 웃겨서 깨달음은 꼭 반 박자 느리게 온다고, 이별의 글을 쓸 때가 와서야 비로소 늘 빠뜨려 왔던 것을 기억해냈다. 

 

 

 

다름 아닌 신촌이었다. 

 

 

투티거스, 아무, 앤트러사이트 연희, 파가니니, 쇼콜라티끄, 산책길의 네 계절, 그리고 독수리 다방까지.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치열하게 적어 담아낸 곳들은 모두 신촌이 지켜내 선물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들을 빌어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오래 묵혀두었던 감사를 전했으며, 마주하기 두려웠던 내 안 깊숙한 곳까지도 용기 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늘 신촌에게 좋은 글을 선물하는 건 내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통금 시간이 일러 늘 뒷풀이는 고사하고 지하철에 몸을 던졌던 새내기가 신촌의 술집을 골목별로 섭렵해버린 라떼 졸업생이 되기까지 너무 많이, 또 너무 오래도록 받아와서였을까. 신촌은 늘 그 자리에, 나를 위해 그대로 있어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고 받았음에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철이 덜 든 아이마냥,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단짝친구처럼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보이는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멀어지고야 마는 네가 끝내, 두고 두고 마음에 걸려서.

 

 

 

받아온 사랑을 어렴풋이 깨닫는 날이 오더라도 아이가 당장 내밀 수 있는 건, 주머니를 털어 산 카네이션과 유치한 편지지에 눌러 쓴 ‘크먼 효도하개요’가 전부인 것처럼 – 나는 신촌에게 해줄 수 있는게 통 없다. 그럼에도 이왕이면 가장 예쁜 카네이션과 제일 안 틀린 글씨를 건네고 싶은 마음에 오래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아직도 받은 만큼 돌려줄 최고로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쁘게, 가장 찬란하게, 가장 아름답게 신촌을 입혀주기로 했다. 구석구석, 고마운 마음을 한껏 담아 화려하게. 지난 사 년간 신촌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 것처럼.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신촌 컬렉션이 탄생했다. 2021 f/w 치고는 조금 투박하지만, 원단부터 디자인, 색감과 디테일까지 모두 신촌의 조각들로 재단하고 완성한 아홉 개의 착장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2021 f/w 

Collection

 

in Sinchon

                                                                                                        

 빨잠 건너편 버스킹 존

 

조금은 이른 노을도시를 향해 번져 갈 때면 어우러짐과 모순에 대해 생각했다.

전깃줄에 걸린 구름이나 백화점 옥상에 앉은 같은 것들.

신촌과 노을은 늘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창천교회 앞

 

가을이 매 년 출석 체크를 하는 곳.

나보다 몇 배는 큰 나무 하나가 선명히 노랑을 띠는 게 참 위안이 됐었다. 

 

 

 

연대 앞 횡단보도 건너 첫 번째 골목

 

과 소극장이 있는 골목을 좋아했다. 

조금 더 가면 튀김집이 있었는데.

여름보단 겨울 밤에 손을 호호 불며 

따뜻한 곳에 들어가 먹는 맥주가 더 좋다. 

 

 

 

백양로  

 

이어폰을 꽂은 채 쭉 뻗은 길을 걷다 보면 자꾸만 눈을 감게 됐다. 

눈을 감아도 길을 잃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나,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빠져나오면 조용히 길을 내줬던 아침의 백양로

공기와 매일 듣던 그 때의 플레이리스트.

 

 

 

연세로 고르드 앞

 

그 날의 하늘을 보는 데에는 가로수의 공이 크다. 

하늘을 잇는 가장 예쁜 세로줄.

바닥을 보고 걷다가도 어느새 눈이 그 줄을 타고 올라와 

뜻밖의 눈부신 파랑을 찾게 되기 때문일 거다. 

 

 

 

신촌 할리스커피  

 

빨강이 좋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제일은 아마 강함과 동시에 예뻐서가 아닐까. 

그래서 늘 신촌과 나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빨강이라고 생각했다. 

 

 

 

연대 앞 횡단보도  

 

원래 이 켜진 횡단보도에서 절대 뛰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걸 정말 싫어했고, 

마음이 초조한 건 더더욱 싫었다.

...

신촌은 반 년만에 나를 달리기 선수로 만들었다.  

이제 는 일단 건너고 본다. 

 

 

 

 연세 암 병원  

 

학교 안에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점심 대용 공차를 마시러, 

엄마가 좋아하는 파리크라상의 딸기 케이크를 사러, 

병원 지하에 들를 때 

나도 모르게 너무 행복해서 괜히 죄송할 때가 있었다.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다리 밑

 

크리스마스, 수박, 딸기, 장미

그리고 토요일 밤 신촌의 빛깔. 

촌스러운 색의 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떠나게 될 때가 따로 존재하는 걸까.

 

이렇게 구구절절한 인사를 하면서도 자꾸만 그리운 걸 보면 

 

아직은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도 같은데.

 

 

아주 오랜만에 간 신촌에서 처음 만난 누군가가 그랬다. 바리스타들은 직업의 특성 상 매장과 지역을 자주 옮기게 된다고.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서.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내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공간이기에, 그래서 떠나는 거라고. ‘그렇다면 공간과의 이별에 어느 정도 굳은살이 박히셨겠네요’, 물음 아닌 물음을 던졌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였다. 늘 두고 온 것들은 아쉽고, 새로운 것들은 두렵다고. 그럼에도 그의 눈에 후회는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같은 신촌, 같은 공간,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그와 나는 전혀 달랐다. 그는 신촌과 함께 나아가고 있었고, 난 아니었다. 

 

신촌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더 궁금한 것도 없었다. 

 

그동안 받은 것들이 떠오르고, 애써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 차올랐던 것도 아마 진짜로 떠날 때가 됐기 때문일 테다. 지금까지 글에 담지 못한, 그러나 내가 가장 자주 만나고 사랑했던 신촌의 조각들을 예쁘게 모아 본 것도 같은 이유에서겠지. ‘안녕’이라는 말을 씩씩하게 잘 해내기 위해. 미안함이나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을 더 많이 안고 나아가기 위해.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잠시 가방에 넣어 두고, 어느새 느슨해져버린 신발끈을 고쳐 매기 위해. 

 

 

사실, 때를 알면서도 자꾸만 망설였던 것 같기도 해. 

 

지금까지의 내 성장 소설 중 가장 크고 넓은 배경은 단연코 너였으니까.

 

 

아직도 사진첩은 너로 가득 차 넘실거릴 만큼

 

촌스러운 색 조합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신촌은 크리스마스같이 그렇게 나에게 남아주었으면 한다. 아주 잊고 있다가도 겨울 코트를 꺼낼 때쯤 가만히 그리워지는 곳으로.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만나면 함께 하루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친구로. 그래준다면, 이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뜸 들인 안녕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미처 다 갚지 못한 사 년간의 받음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걸로 꼭 갚을게. 

 

이 마음이 죄책인지,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게 사랑이라면, 그렇다면.

 

사랑해.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안녕 

 

 

 

 

 

 

 

 

 

 

 

 

 

 

 

 


챌라또
AUTHOR PROFILE
챌라또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2

  1. Someone
    Someone 2021.11.10 22:33

    챌라또님 투티거스 글을 읽었던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니 참 기분이 이상하네요.
    그동안 잔치에 올리신 글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금은 신촌을 떠난 몸이지만 에디터님 글을 읽을때마다 신촌에서의 따뜻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신촌에게 받은걸 다 갚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쓴 8편의 글은 무엇보다 값진 선물일거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 에디터님 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1. 챌라또
      챌라또 2021.12.06 23:23

      댓글 이제야 확인하고 답장 드려요. 글은 자주 들여다 봤는데 이렇게 좋은 인사를 너무 늦게 봤네요..! 중간에 빈 시간도 있었는데, 첫 글부터 함께 쭉 해주셨다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너무 감동이고 감사하네요. 욕심인 걸 알지만 내가 쓴 글이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고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답신을 받은 것 같아 진짜 기뻐요!! 저도 계속 글을 써서 언젠가는 또 글로 만나는 날이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someone님께도 신촌이 크리스마스처럼 그렇게 남아주기를 바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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